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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베이터 - 논제

interfacer_han 2024. 9. 29. 03:33

#1 개요

논제는 무엇에 대해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정의내린다. 논제는 '내용에 대한 제목' 이상의 무게감을 지니는데, 그 이유는 논제가 아주 살짝만 틀어져도 토론 결과가 뒤집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또, 좋은 토론은 좋은 논제에서부터 시작된다.

 

#2 핵심 논리

#2-1 논제

사람들은 실제로 특정 주제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단 '마치 주제에 부합하는 양 말하기'를 더 잘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미묘하게 주제를 바꾸면서, "그 점과 관련해서" 같은 말을 종종 끼워넣으며 마치 그 주제에 관해 말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이야기다. 우리 대부분은 자유롭게 흘러가는 가벼운 대화를 즐기기 때문에 자기 말이 주제에 부합하는 지 애써 점검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근거를 대는 척하다가 주제에서 멀어져 결론으로부터 한참 벗어나버린다. 하지만 토론자들은 그 반대다. 언제나 한 가지 주제로 시작한다.

논제란, 두 사람 이상의 견해가 다른 주요 지점에 관한 진술이다. 어떤 의제가 적절한 주제인지를 가장 쉽게 확인하려면 반대로 써보면 된다. 어떤 의제와 그 의제를 반대로 쓴 것 모두 자신과 상대가 믿는 바를 정확히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경제'나 '건강' 같은 일반론적인 주제는 토론 지점이 분명치 않기에 채택될 수 없다. 또, '나는 춥다'와 같은 순전히 주관적인 의견도 주제가 될 수 없다. 상대가 '아니다, 당신은 춥지 않다'라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제는 토론의 가장 중심되는 기둥이다.

 

#2-2 논제의 3가지 형태 (사실 토론, 가치 토론, 처방 토론)

사실 토론은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주장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라고스는 대도시다", "파리는 2016년보다 2014년에 범죄율이 낮다." (키워드: 사실, 세부 사항)

가치 토론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판단, 즉 우리가 볼 때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이나 추구해야 하는 존재 방식이 중심이다. "거짓말은 비도덕적이다(라고 보아야 한다).",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 (키워드: 가치, 사고방식, 판단)

처방 토론은 우리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와 관련된다. "우리 가족은 체육관 회원권을 구입해야 한다.", "정부는 언론의 자유에 아무 제한도 두지 말아야 한다." (키워드: 처방, 접근 방식, 결론)

논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어떤 토론을 할 지가 결정되며 그 종류는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2-3 주제 분석과 그 예시

주제 분석
사실 주제, 가치 주제, 처방 주제는 지나치게 깔끔한 분류다. 현실에선 이러한 주제는 한꺼번에 엉킨 형태로 우리와 부딪힌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논쟁 주제를 찬찬히 살피고 제대로 식별해야 한다. 엉킨 논쟁의 실타래를 잘 풀어헤치고 그중에 일부를 해결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주제 분석'이라 한다.

주제 분석의 예
"우리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지역 공립학교에 보내야 한다." 이 문장에서 찬반을 불러일으킬만한 단어는,
보내야: 뭘 해야 할지에 대한 논쟁, 즉 처방 토론의 건덕지임
지역 공립학교: 지역 공립학교가 어느정도 수준인지에 대해 토론 참가자들이 서로 다른 사실 정보를 가졌을 수도 있고 학교의 목적에 대한 가치판단(학업 성취인지 지역공동체 개념인지 등)도 다를 수 있음
아이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그들의 성격이나 소망을 고려해야 함
부모: 부모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음

위 문장에선 '보내야'라는 단어에 의해 유도되는 처방 토론인줄 알았던 쟁점이, 사실은 몇 가지 논쟁이 겹겹히 쌓인 다층성을 띄고 있다. 그리고 이 다층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서로 딴말을 하게 되어 있다. 양쪽이 같은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지도 않는데 무슨 진전이 있길 바라겠는가? 주제 분석의 이점 주제 분석은 위 문장에서 발생된 다층적 논쟁거리를 파생시킨 근본적인 충돌 지점을 알게 해준다. "자식과 공동체에 대한 부모의 의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이다. 그리고 이 점에 동의한다면, 교착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처방에 대한 주장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가치판단에 대한 의견 차임을 알았으니까.

분석해야만 비로소 의견 대립의 근원을 알 수 있게 된다.

 

#2-4 주제 분석의 효과 (어디에서 전투를 벌여야 하는가?)

주제 분석은 우리가 어디에서 전투를 벌일 지를 고를 수 있게 해준다. 즉 반드시 이겨야 할 주장과 져도 되는 주장을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어떤 부모가 학교엔 모든 기본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사실), 부모에겐 공립학교 시스템을 향상시킬 의무가 있으며 (가치), 아이들을 그곳에 보내야 한다 (처방)고 믿는다고 해보자. 다른 부모는 그에게 전적으로 동의할 수도 3가지 주제를 다 반대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사이 어디즈음 회색지대에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대부분의 논쟁에서 우리의 목표는 상대와의 차이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좀더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므로 굳이 전면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 청중에게 처방책을 설득하는 것이 주목표인 토론자라면, 접근 방식에 대한 동의를 얻는 것만으로도 완전한 동의를 얻는 것만큼의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논제는 토론의 핵심 기둥이다. 따라서 그 기둥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접근하는가를 제안하고ㆍ받으며, 합의하는 것만으로도 향후 토론의 방향이 결정된다. 토론은 이 시점부터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2-5 악의적 주제 분석 ('다람쥐')

좋은 토론 주제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균형잡힌 것이어야만 함 적어도 서너 가지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하는 깊이가 있어야 함 전문가적 지식 없이도 누구나 생각해볼 만한 것이어야 함 도전하고싶을 만큼 흥미로워야 함 토론 대회의 세계에선 최고의 논제 선정 전문가들이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어 단단한 기반 위에서 논쟁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저자의 경험
토론대회에서 우리는 "기분전환용 마약류를 합법화해야 한다"라는 주제에 찬성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대회에서 승리하고 싶은 열망에 휩싸인 채, 우리는 마침내 이런 위험한 질문에 도달했다. 단순히 주제를 분석만 할 게 아니라 그걸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기분전환용 마약류'를 처방약과 대마초로 한정하고 LSD나 엑스터시처럼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약물은 제외하는 전략을 쓰기로 했다. "우리의 정의(Definition)는 자유와 공중보건 사이에 올바른 선을 긋습니다. 이것은 전문가들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말을 하자 상대팀에서는 야유가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어리숙한 대학생 심판은 우리의 교란을 눈치채지 못했고 결국 우리는 승리했다.

'다람쥐'
후드 선생님은 우리가 대회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주제를 엉터리로 정의하거나 해석하는 불공정한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다람쥐'와 의제 선정자는 숙적이라고 설명했다. 토론 세계에서, 주제를 자기 입맛대로 변형시키는 입론자를 '다람쥐'라고 부른다. 토론 방해꾼이나 마찬가지인 다람쥐는 우스울 정도로 터무니없는 말을 할 때도 있으며 결국 자승자박하게 된다. 다람쥐가 토론을 쥐고 흔드는 경우도 (우리가 썼던 전략처럼) 가끔은 생긴다고 하셨다. 그래서 의제 선정자들은 다람쥐가 악용을 하지 못하도록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모호성을 없애고 단어를 가다듬어 뜻을 더 명확히 한다. 하지만 완벽한 방어가 되진 않는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마지막으로 입론자들의 선의에 기댄다.

'다람쥐'. 재밌는 표현이다. 한편으로는 끔찍한 존재다. 왜냐하면 논제 선정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선정한 논제조차, 아주 교묘히 '다람쥐 짓'을 하는 입론자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균형이 무너져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입론자들의 선의에 기댄다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2-6 '다람쥐'의 또 다른 예

당시 내가 몰랐던 것은, 잘 살펴보면 공론장은 사방이 다람쥐 천지라는 것이었다. (새롭게 생긴 신조어인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며) 친구들끼리 긴 논쟁을 펼치는 동안 나는 왜 우리가 그처럼 투박하고 분열적인 용어를 중심으로 갑론을박해야 하는지 의아했다. 마치 주문을 외듯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만 던져도 아이들 사이에서 의견이 양분되고 분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문득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은 절대 중립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PC 문화'를 우려해 마지않는 사람들은 그런 문화가 실재할 뿐 아니라 해롭다는 고정불변의 가정과 함께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에 이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 사람들은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 부당하게 이 말에 의존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토론 방해꾼, 즉 다람쥐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편 역시 이 말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전유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올바름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개념이 '친절함'을 뜻한다고 재정의했다. 그럼으로써 상대편이 친절함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얼토당토않은 프레임을 씌웠다.

요컨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 자체가 점점 양극화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다람쥐 짓의 가장 큰 해악은 당장의 의견 차이를 회피하려는, 즉 상대에게 맞설 여지를 주지 않고 성급하게 결론을 지어버리려는 충동에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 접근은 당장에 승리를 가져올 순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의견 교환의 가능성을 지레 닫아버리기도 했다.

저자의 말대로 공론장은 정말 다람쥐 천지다.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3 나의 생각

#3-1 토론은 '대화'가 아닌 '태도'다

핵심 논리 중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다. 논제 선정 전문가들이 기를 쓰고 '다람쥐'가 발생하기 힘든 논제를 도출해냄에도,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결국 입론자들의 선의에 기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방패보다 창이 일방적으로 더 강한, 균형이 깨져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결국 토론은 대화가 아니라 태도다. 대화는 누구나, 형식적으로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화를 통해 건설적인 결과를 얻고자하는 마음가짐은 아무나 가지지 못한다. 토론의 승패에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경우(특히 정치)라면, 나조차도 '다람쥐 짓'에 대한 유혹에 이끌릴 것 같다. 다시 말해, 논제를 존중하지 않고 내 입맛대로 해석하려는 충동에 이끌릴 것 같다.

 

그래도 역시 아닌 건 아니다. 말 그대로 논제에서 교묘히 벗어나는 반칙적 행위가 아닌가. 대화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다람쥐 짓'을 하는 사람은 대화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3-2 '다람쥐'를 예방해야한다는 현실

토론은 이른바 '나쁜 갈등'을 '좋은 갈등'으로 전환하려는 이성의 산물이다. 그런데 그 토론에서 교묘히 사람들을 속여먹는 '다람쥐'가 존재한다는 현실이 슬프다. 또 그런 다람쥐 때문에 골머리 썩히며, "어떻게 해야 다람쥐를 예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야한다는 현실은 어찌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꼭 남을 견제하기 위해서 그런 고민을 해야하는 것은 아니긴 하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어느 측면에서는 분명 '다람쥐'일 테니까. 남들이 '다람쥐'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또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다람쥐' 예방법을 익혀두어야 할 것이다.

 

엄격히 관리되는 토론 대회에서 '다람쥐'는 보기 힘들 것이다 (#2-5에 있는 저자의 경험(토론 대회)은 저자가 초중등생일 때 발생한 일로 관리가 철저한 토론 대회는 아닐 테다). 아마 일상적인 대화에서 많이 나올텐데, 이는 #2-1의 내용인 사람들의 '마치 주제에 부합하는 양 말하기'와 형태가 닮아 있다. 결국 우리는 사람이기에 자기 얘기만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4 요약

논제는 토론의 기둥이다. 그 기둥을 갉아먹는 다람쥐을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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