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완벽주의자는 자주 불안, 스트레스, 걱정 같은 불쾌한 '느낌'과 싸운다. 완벽한 저녁 식사 장소를 정하기만 하면, 완벽한 휴가 계획을 세우기만 하면 더 이상 불편한 느낌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부정적인 느낌은 계속 찾아온다. 우리는 느낌에게 공간을 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느낌이 어느 정도의 크기로 얼마만큼 머물다 갈지 정하고, 그 사이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삶에는 아픔, 괴로움, 결함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결함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감정들을 회피하려 하면 '좋은', '훌륭한', '매력적인', '유능한', '똑똑한'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 때마다 위축되고 만다. 그래서 완벽주의가 중독성이 있는 것이다. 훌륭하게 해내면 트로피, 칭찬, 돈, 좋아요 개수 등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딘가 부족한' 사람인 것 같은 불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완벽해지는 순간 이 모든 불쾌한 기분이 사라질 거라고.
#2 책 요약
#2-1 느낌의 기원
느낌이 원시 사회에서 생존에 미치는 이점은 막대하다. 따라서 우리가 느낌에 민감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불안, 스트레스, 걱정의 영향이 이토록 큰 이유다.
그러나 현대사회와 문화는 생물학보다 급격하게 진화했다. 느낌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하기보다는 고통을 유발하여 점차 행복을 잠식해 나간다. 따라서 우리는 도움이 되는 느낌과 되지 않는 느낌을 구분하여 선택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가령 운동 중 근육이 땅겨서 아프다면 운동을 멈추는 게 도움이 되겠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 노력할 때의 불안은 감수하는 편이 낫다.
#2-2 느낌은 유효하다
그러나 도움이 되는 느낌이든 되지 않는 느낌이든 유효하긴 매한가지다. 느낌은 실용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저 존재할 뿐이다. 느낌은 걱정처럼 우리의 통제권 밖에 있다는 얘기이며 느낌에 반응하거나, 대응하거나, 혹은 합리화(일관성의 덫이다)할 의무가 없다는 얘기다. 이는 느낌의 절대적 유효성을 부정하는 "진정해야지",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따위의 말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저 존재할 뿐인 느낌을 설명하도록 강요받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왜 울어?", "왜 그렇게 불안해해?", "왜 화를 내?"라는 질문에 우리의 느낌을 설명해야 했다. 심지어 그 설명은 '일관적으로 질문자가 만족할 만한 것'이어야 했다. 결국 당신의 느낌의 유효한지에 관한 여부를 다른 사람이 판단하도록 두었다. 그렇게 우리는 '유효하지 않다고 믿었던' 느낌을 암묵적으로 회피해왔다.
#2-3 감정의 회피
지금이라도 우리는 모든 느낌의 존재를 허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느낌(감정)의 회피가 삶의 공간을 축소해 나갈 것이다. 평가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친밀감에 대한 부담감을 회피하기 위해 사람들을 밀어내며, 짐이 되는 것 같은 자괴감을 피하고자 스스로를 지워낼 것이다.
게다가 느낌의 회피는 (단기적으론 가능해도) 장기적으론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인간으로 살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물에 젖지 않으려 애쓰는 것과 똑같다. 피할 수 없는 일을 피하려 할 때 필요한 고통마저 불필요한 괴로움이 된다.
혹시 당신은 모든 느낌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모든 파도를 피하지 않고 나쁜 파도만 피할 수는 없다. 바다에서 어떤 파도가 당신을 덮칠지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의 취향은 실제로 밀려드는 파도와 아무 상관이 없다. 당신은 기꺼이 모든 파도를 경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2-4 수용의 의미
"불편함에 마음을 열어라", "스트레스와 더불어 살아라", "불안한 느낌을 받아들여라" 같은 말들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느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느낌을 (애초에 불가능하지만) 떨쳐버리려 애쓰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는 개념이다.
느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첫째로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 훌륭함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평온하고, 대수롭지 않은 실수에 떳떳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포옹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뿐더러 자기파괴적 행동들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고통은 당신이 진정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거절당해 상처받았다면 그 고통은 당신이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임을 말해준다. 당신은 무관심한 것들로부터 상처받을 순 없고, 관심을 끄지 않는 한 상처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늘 어떤 감정들로부터 도망치려 했다면 당신은 회피하는 연습은 부단히 해왔지만, 느낌을 지니고 있는 연습은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달갑지 않은 느낌을 위해서 공간을 만드는 시도는 고통을 느끼는 작업에 능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을 느끼는 것에 노련해진 스스로를 상상해 보라. 그것은 고통이 삶에 파고들 때 그것을 느끼되 휘둘리지 않고 있던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수용acceptance이다. 우리는 낯선 이의 친절과 호의를 받아들인다. 사람들의 덕담과 선물을 받아들인다. 마찬가지로 불안, 스트레스, 걱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2-5 느낌을 위한 공간 만들기 1
느낌을 수용한다는 것은 그것이 존재할 공간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 느낌을 좋아하라는 게 아니라 그저 공간을 줄 뿐이다. 마치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흉측한 가구를 놓을 공간을 거실에 마련하는 것과 같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연습을 해보라. 이 글을 어디에서 읽고 있건 어색한 자세를 취해보아라. 침대에 누워 있다면 걸터앉아보고 소파 옆에 기대거나 바닥에 있다면 굴러보아라. 그리고 지금부터 안내할 다음 연습을 하는 동안 계속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라. 불편한 자세를 취했다면, 아래 순서를 따라 해보라.
- 당신의 몸에서 가장 불편한 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려 보아라. 어깨인가, 목인가? 등 아래쪽인가? 턱인가, 다리인가, 가슴인가? 유독 불편한 곳을 알아차려라. 그리고 천천히 그곳에 주의를 집중해라. 어떤 식으로든 그 느낌을 바꾸거나 통제하려 하지 마라.
- 그 느낌에 얼굴을 주어라.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불편은 어떤 모습인가? 불편의 모양, 색상, 크기, 표정, 밀도는 어떤가?
- 불편한 느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혹은 어떻게 움직이지 않는지 관찰해라. 위아래로 움직이는가? 중심에서부터 서서히 퍼져 나가는가? 사방으로 튀는가? 파장처럼 고동치는가? 아니면 완벽하게 정지한 상태인가?
- 몸 안에서 그 느낌의 경계를 추적해 보아라. 그 느낌이 어디서 끝나는지 따라간 다음 그 주위로 경계선을 그려라. 한 발짝 물러나 그 느낌이 존재하는 공간을 바라보아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지켜보아라.
- 느낌을 전체적으로 파악했다면 마치 영화를 보듯 그 느낌을 관찰하라. 매 순간 바뀌는 장면을 보아라. 느낌이 제 갈 길을 가게 하라. 당신이 할 일은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다. 뒤로 되감지도 말고, 앞으로 빨리 돌리지도 마라. 호기심을 갖고 보아라. 마치 전에는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본 적이 없다는 듯이. 저 느낌이 이제 무얼 하려나? 어디로 가려나? 저 느낌이 내 몸의 어느 부위로 번지려나?
-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느낌을 관찰했다면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 느낌의 새로운 면을 찾아보아라. 어쩌면 새로운 곳에서 생각지 못한 느낌이 나타날 수도 있다.
- 다시 5번으로 돌아가라. 마음의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아 잠시 무대를 구경해보라.
몸을 움직여 어떤 식으로든 느낌을 바꾸려 하지 않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불편한 느낌을 관찰할 수 있었다면 당신은 수용을 연습한 것이다. 불편한 느낌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도록 공간을 준 것이다.
불편함을 느끼는 다른 상황에서도 이 순서대로 연습해 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저녁 식사 장소를 고를 때 스트레스를 느낀다면 이 단계를 밟아보아라. 스트레스를 느끼고, 스트레스를 관찰하고, 스트레스에 공간을 주는 것이다. 수용이 경지에 이르기 전 혹은 영영 어려운 연습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몸을 움직여 불편한 느낌에 굴복할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부정적인 생각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2-6 느낌을 위한 공간 만들기 2
그러나 혹시 당신이 불편을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길 바란다. 원칙과 논리가 그렇듯이 회피는 어디에나 있다. 회피하면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회피하고 있다면 수용 연습은 허울일 뿐이고 아무리 연습해도 기술은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 회피의 양상은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수용 연습이 끝나고 안도감을 느낀다면 회피의 징후일 수 있다. 한쪽 눈을 시계에 고정한 채 불편을 견디고 있다면 그것 역시 회피다. 이는 느낌이 존재할 공간을 충분히 주지 않은 것이다. 연습이 끝난 뒤 사라져 주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머물러도 좋다는 식이다. 마치 짐짝 같은 주황색 의자를 보면서 의자를 기증하기로 한 날까지 날짜를 꼽고 있는 것과 같다.
반대로 연습하는 내내 너무도 편안했다면 그것 역시 회피일 수 있다. 아마도 당신은 그 불편을 그럭저럭 견딜 만한 무언가로 바꾸었을 것이다. 이는 마치 연인에게 지금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어보라는 것과 같다. 연인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면 연인이 끊임없이 당신을 감동하게 하려 애쓸 필요가 없는 것처럼, 불편한 감정도 당신이 받아들이기 위해 다른 어떤 것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
다양한 받아들이기 기술을 시도하다 보면 낯선 곳에 도달하게 된다. 그 깨달음의 순간을 말로 설명하기 쉽진 않지만 어느 순간 느낌과 싸우고 있지 않으며, 편안히 숨 쉴 수 있고, 느낌을 아무 조건 없이 그대로 놓아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조금 홀가분한 기분이 들고, 그 상태에 잠시 머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수용의 기술을 습득해 가고 있는 것이다.
#3 나의 생각
언젠간 추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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