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완벽주의자는 '자기비판'을 연료로 삼아 일한다. "나는 부족해", "나는 문제가 있어"라는 꼬리표를 스스로에게 붙인다. 애석하게도 이들은 자기비판 없이 다른 방식으로 일해본 적이 없다. 스스로에게 붙인 꼬리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좁게 만들고 자신의 행동을 규정할 뿐, 자기비판과 성공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자기비판 없이도 당신은 지금보다 더 더 잘할 수 있다.
당신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세 가지를 적어 보아라. 어렵지 않게 당신은 스스로에게 꼬리표를 붙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 꼬리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특정 단어로 설명하는 것 역시 일관성의 덫에 걸려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논리의 지도를 만든다. 그래야만 이야기의 단편적인 요소들이 서로 들어맞고 새로운 상황에 편리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꼬리표를 붙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 꼬리표들이 역으로 당신의 행동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규정한다는 점이다.
#2 책 요약
#2-1 자기 꼬리표와 자기 이야기
자기 꼬리표
= 자신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수식어
= 일관성 있는 자기 이야기
= (자기비판을 포함한)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
우리는 꼬리표를 일관성 있는 내러티브로 엮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늘 도보여행을 하고 배낭여행을 하고 등산을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자기 꼬리표와 자기 이야기는 완벽주의가 당신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원칙과 논리로 요약된다. "나는 훌륭한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만 한다"는 식이다. 꼬리표에 매몰된 사람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향상하는 선택이 아닌, 자신만의 논리에 부합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처럼 꼬리표와 이야기는 그 형식만 다를 뿐 같은 기능을 한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꼬리표와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식으로 대하느냐다.
#2-2 꼬리표와 이야기가 문제가 될 때
생각이나 느낌처럼 자기 꼬리표와 자기 이야기도 그 자체로는 해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들과의 관계로 인해 당신이 원하는 삶과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해로운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을 '좋은 친구'라 여기고 친구가 외롭고 슬픈 순간에 위로할 수 있다면 좋은 친구라는 꼬리표는 건설적이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는 꼬리표에 충실해지고 싶어서 당신이 우울의 늪에 빠져 있을 때조차도 친구를 도우려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아래는 꼬리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3가지 유형이다.
(1) 꼬리표가 행동을 지배하는 경우
당신의 행동이 꼬리표에 의해 결정된다면 목표와 가치에서 멀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대에 진학하는 이유가 아픈 이들을 돕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꼬리표가 영혼을 채워주진 않기 때문이다.
(2) 꼬리표가 고통을 유발하는 경우
꼬리표에 대한 집착이 행동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여전히 해롭다. 왜냐하면 일관성 없는 상황에 부닥쳤을 때 필요 이상의 의심, 절망, 불안, 수치심, 죄책감을 느낄 수 있고 이것이 고통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사회적 정의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진 않은지 경계하고, 그 특권을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후원하고, 중소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고, 매일 뉴스를 챙겨보고, 지역 선거가 열리면 투표를 해야 한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곧 '위선적'이고, '이기적'이며,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더구나 이런 힘든 감정에 짓눌리다 보면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게 될 수도 있다. 꼬리표의 요구에 철저히 부응하는 것은 뷔페에 갔는데 그곳에 있는 음식을 전부 다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꼬리표에 유연한 태도를 지니는 것은 뷔페에서 먹고 싶은 것들을 먹고 배가 부르면 뷔페를 떠나는 것이다.
(3) 꼬리표로 진실을 가리는 경우
꼬리표가 자신과 세상을 향한 인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면, 실제 일어나는 일이 아닌 꼬리표가 '일어났어야 한다며' 부추기는 일을 믿게 된다. 이야기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기에 실제 경험을 꼬리표의 말로 왜곡해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향적'이라는 꼬리표는 파티에 가서 재밌게 즐기고 온 당신이 '힘들었다'고 말하게 만든다. 또, 당신이 '쿨한' 사람이라면 연인과 헤어졌을 때도 상대방이 마침내 마음을 접은 것은 당신에게 '좋은' 일이기 때문에 본인이 느끼는 슬픔을 전부 부정한다.
#2-3 꼬리표와 이야기를 떼어낸 당신은 누구인가
당연하면서도 좋은 소식은 자기 꼬리표와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집착은 선택사항이라는 것이다. 꼬리표의 삶이 아닌 실제 경험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조망수용perspective taking을 연습해야 한다.
꼬리표가 없는 당신은 누구인가? 여러 자아가 당신의 인식을 흐려놓지 않을 때 그저 존재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아라. 자신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으니 홀가분한 기분이 들 것이다. 눈가리개를 벗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부여한 정체성을 놓아버리면 기존의 이야기에 부합되는 모습이 아닌 본모습 전체가 드러난다. 가령 무명 가수의 노래를 즐겨 들으면서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에 공감할 수도 있다.
(1) 조망수용의 시작
조금 더 나아가서 이제 자신을 완전히 놓아보아라.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여기건, 그것으로부터 물러서라. 현재에 머물며 생각들, 느낌들, 꼬리표들, 이야기들을 관찰해라. 꼬리표를 떼어내고 자아를 놓는 과정. 이 과정은 마치 평지에서 높이 솟아오른 산을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 하늘에서 비행기를 타고 산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다. 조망수용은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바꾸는 게 아님을 명심하자. 우리는 관점만 바꾼 것이다.
(2) 꼬리표 정리
먼저 자신이 자부심을 느끼는 꼬리표들을 떠올리는 것에서 시작하라. '계획성 있는', '지적인', '체계적인', '생산적인', '재능 있는', '목표 지향적인', '효율적인' 등등 당신이 수긍할 수 있는 어떤 말이든 상관없다. 그 꼬리표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 그 꼬리표와 당신의 관계는 어떤가? 그 꼬리표가 당신을 얼마나 많이, 혹은 얼마나 적게 설명하는가? 꼬리표에 애착을 느끼는가, 덤덤한가, 반감이 드는가? 두려운가 혹은 설레는가?
(3) 관점 전환
이제 하늘과 평지를 오가며 보아라. 그렇게 관점을 바꾸는 것이 당신과 꼬리표와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차려라. 어렵다면 문자 그대로 꼬리표를 하나의 산으로(혹은 건물, 호수, 나무) 시각화한 다음 평지와 하늘을 오가며 보아라. 시각화한 물체에 세부적인 요소(하늘을 날 때 바람의 느낌이라든가, 발에 닿는 대지의 감촉이라든가)를 가미할수록 연습하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사실 조망수용은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익숙한 능력이다. 예를 들어, 당신을 40분이나 기다린 친구의 입장이 되어 그가 얼마나 화가 날지 생각해 보기 어렵지 않다. 또 당신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반려견이 얼마나 외로울지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단지 우리는 조망수용을 내면의 경험에 잘 적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4) 정리
자기 자신을 꼬리표와 이야기의 집합으로 보지 마라. 하늘은 무한하고 수많은 산과 바다와 사막과 숲과 피오르와 빙산을 품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하늘을 규정하진 않는다. 수많은 꼬리표와 이야기들에서 벗어난 무한한 자아 혹은 관찰하는 자아도 마찬가지다.
#2-4 완벽주의 속의 자기비판
자기비판은 자기 꼬리표와 자기 이야기의 한 형태로, 지금까지의 모든 설명이 자기비판에도 적용된다. 당신이 늘 들고 다니는 자기비판은 어떤 것들인가? "자제력이 없어", "항상 불안해", "생각이 너무 많아", "외톨이야", "다들 내가 무능하다고 생각해" 혹은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을 거야" 등 자기비판적인 꼬리표와 이야기 세 개를 떠올리고 노트에 적어보자. 떠올린 자기비판을 얼마나 오래 들고 다녔는가? 가장 오래 들고 있었던 것 하나를 골라라. 처음 그 생각을 했을 때를 떠올려라. 당신은 몇 살이었나? 대부분의 사람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고 대답한다.
당신이 고른 것이 최근(1년 혹은 2년 전)에 나타난 것이라면 다른 것을 골라라. 때로 우리는 지나치게 가혹한 자기비판은 일부러 모른 척 피한다. 마치 정복할 수 없는 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큰 것을 골라라. 자기비판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소환해라. 어린 당신이 그 생각과 싸우는 장면을 상상해 보아라. 당신은 어디 있는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가? 어떤 냄새를 맡는가? 오감을 이용하여 그 장면에 최대한 살을 붙여라. 어린 시절 당신의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현재의 관점에서 어린 당신을 바라보는 기분이 어떤가? 작고 순진한 당신은 아직 아는 게 없다. 그 아이는 자기비판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어떤 힘으로 강요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작은 사람은 자신이 나약하고 쓸모없으며, 부족하고, 곁에 두기 힘들고, 일을 망치는 사람이라고 믿고, 자신의 본모습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가 지게 된 자기비판의 무게를 느껴보아라. 이제 당신은 그때보다 훨씬 자랐지만, 그 말들의 무게는 줄지 않았다.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자기비판은 당신을 갉아먹고, 아직도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2-5 자기비판의 폐해
자기비판을 진실로 받아들일 때 꼬리표나 이야기와 똑같은 위력(#2-2)을 지닌다. 자기비판은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너무도 서서히 갉아먹어서 삶이 왜곡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현재의 삶을 당신이 일구려 했던 삶과 비교해 보아라. 자기비판의 미사여구를 믿는 바람에 잃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당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만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당신에게 어울린다고 자기비판이 말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익숙한 삶에 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분한 취미생활, 은근하게 신경을 긁는 친구들, 만족스럽지 못한 관계, 무료한 일, 그게 나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두를 만족시키려 애쓰느라 끊임없이 사과하고, "네!"라고 대답하고, 말을 가려서 하느라 지쳤을지도 모른다. 자기비판의 영향력을 되짚어볼수록 삶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자기비판에 소모되었는지 깨닫고 놀랄 것이다.
자기비판 때문에 당신이 한 일과 하지 못한 일들을 적어보아라. 자기비판의 말들을 믿은 것이 당신의 행복에 얼마나 큰 타격을 주었는지, 또 현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라.
#2-6 자기비판이 동기를 부여한다고?
어쩌면 당신의 이성이 항의할지도 모른다. 자기비판도 때로는 도움이 되기도 하며, 오히려 동기를 부여할 수도 있다고. 자기비판으로 동기부여를 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고. 자기비판으로 괴로워하는 수많은 내담자를 치료해 온 심리치료사로서 우리는 자기비판이 성공에 필요한 연료라는 신화를 단호하게 부정한다. 당신은 스스로를 혹독하게 질책했고 당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성취한 것뿐이다. 말하자면 그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을 뿐 한 가지가 다른 한 가지를 유발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설령 그 인과관계가 분명하더라도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기며 그 비판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살고 싶은가?
자기비판을 통한 동기부여 방식을 당신이 아끼는 사람에게 적용해 보아라. 여동생에게 너는 가치 없는 존재라고 말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아이에게 수학 숙제를 끝내지 않으면 평생 백수로 살게 될 거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느껴지는 감정들을 관찰하여라. 아마 꺼림칙할 것이다. 질책으로 행동을 독려하다니 불필요하고 잔인한 일이다. 자기비판을 연로로 삼을 때 당신은 스스로에게 매일 이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쉴 새 없이 채찍질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이라면 당신은 어차피 노력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룬 성취 그 모든 것이 자기비판의 결과라면 애초에 당신이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부터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은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증명하려 노력했는가? 아니면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는가?
일을 잘하기 위해 자기비판이 필요하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의 경우 또 다른 문제점은, 그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더 효율적인 대안을 마다하고 평생을 비효율적으로 일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자기비판이 없어도 아마 당신은 여전히, 어쩌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고 삶의 질은 오히려 향상될 것이다. 완벽주의의 페달에서 발을 떼는 순간 맞닥뜨리게 될 부정적인 결과들을 향해 완벽주의가 경고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일관성의 덫이다. 마치 친구가 어떤 레스토랑의 음식이 형편없다고 말했다고 해서 절대 그곳에 가지 않는 것과 같다. 당신의 이성이 말하는 삶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삶을 경험해라. 자기비판이 삶의 가장 큰 동력이기를 원하는가? 다른 삶을 원한다면 위험을 감수해라.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아라.
#3 나의 생각
언젠간 추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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