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자기 계발

디베이터 - 침묵

interfacer_han 2024. 12. 17. 17:25

#1 개요

내가 토론에서 배운 한 가지 교훈은 토론은 시작하긴 쉽지만 끝내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시작, 중간, 끝을 정해놓은 게임에서조차 경쟁심이 모든 걸 뒤덮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되면 토론자는 실수를 저지르며 사람들을 긴장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그 감정은 토론이 끝나고 나서까지 그대로 남았다. 이런 위험을 생각하면 반대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기 에 먼저 잘 생각해보아야 했다. 

침묵하느냐, 아니면 뛰어드느냐. 무엇에 침묵하고 무엇에 침묵하지 말아야 하는가? 만약 침묵한다면 그 이유는? 단순히 감정 조절이 안 되기에 때문일까? 대체 왜 침묵하는가?
 

#2 핵심 논리

#2-1 침묵의 목적 1

일레인 스캐리 교수님은 동의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차단(clogging) 즉, 속도를 늦추고 사람들이 동의 사항을 반복해서 확인하도록 하는 장애물과 일종의 검문소가 훌륭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일상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가장 심각한 분쟁은 말로 하는 논쟁이다. 언쟁은 우리를 고갈시키고 상처 준다. 하지만 언쟁에는 멈춤 장치, 즉 이 언쟁에 참여하는 데 동의하는지를 묻는 기회가 없다. 대신 감정부터 폭발시켜 잔인한 말들을 쏟아내고, 과연 반대할 가치가 있는 주제였는지는 그뒤에야 자문한다.

"차라리 침묵했더라면 중간은 갔을 텐데. 안 하느니만 못한 비건설적인 토론을 하지 않아도 됐을텐데."라는 후회를 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이다.
 

#2-2 논쟁 참여에 대한 판단 (RISA)

나는 논쟁에 뛰어들지 말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체크리스트(RISA)를 만들었다. 논쟁이 순탄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네 가지 조건을 담은 체크리스트였다.

1. 실재할 것 (real)
실제로 양측에 의견 차이가 있어야 한다. 어떤 논쟁은 진짜 반대가 없는 상황에서 전개되는데, 이는 주제를 찾는 다툼일 뿐이다. 가장 힘든 경우는 갈등은 있으나 의견 차는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나는 네 사촌이 싫어"라는 주장은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으나 토론 주제로는 부적합하다. 의견이 아니라 개인의 호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2. 중요할 것 (important)
의견 차이가 반대를 정당화할 만큼 중요해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안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 이 차이들 대부분은 위협적이기는커녕 바람직하기까지 하나, 일부는 논쟁을 유발할 만큼의 반대를 불러일으킨다. 그 판단은 개인적으로 각자 생각해보자 (저자는 자신의 근본 가치를 건들이거나,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대상과 관련되었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자존심이나 방어 본능과 같은 본능에 이끌리지 않아야 한다. 논쟁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고, 쉽게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휘말려 반대에 뛰어들지 않아야 한다.

3. 구체적일 것 (specific)
반대의 주제가 양측이 할당된 시간 안에 어떤 결론이나 개선을 향해 진전을 이룰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어야 한다. '경제'나 '가족 문제'처럼 거대한 주제가 토론에 부적합한 이유다. 점점 더 많은 것에 반대하다가 결국엔 전방위적인 논쟁이 되어버린다. 분명하게 정의된 주제는 이처럼 범위가 확대되는 것을 막는다.

4. 목적이 상호 수용 가능할 것 (aligned)
양측이 논쟁을 벌이는 이유를 서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논쟁을 벌이는 이유가 상대와 같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상대의 동기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논쟁에 뛰어든다. 정보를 얻으려고, 다른 관점을 이해하려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고, 그저 시간을 보내려고, 심지어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만약 상대의 목적이 우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거나 우리 감정을 상하게 하려고 논쟁을 지속하고 싶어하는 거라면 우리는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RISA의 일상적 예시는 바로 아래 저자의 일화에 나온다.
 

#2-3 침묵의 목적 2

(지각한 저자때문에 저자의) 룸메이트 조나는 몹시 화가 난 모습이었다. (...) 의자를 빼 앉으려는데 조나가 나를 질책하기 시작했다. "너 요즘 계속 이런 식이야. 인성이 왜 그래? 내 시간 따윈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 네가 늦은 게 벌써 다섯번째야. 오늘도 너한테 아침에 미리 일러줬잖아. (...) 내가 너처럼 늦은 적 있어?" 조나는 화를 냈다.

내가 자기 시간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조나의 주장을 당장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RISA를 떠올렸다. 그 주장은 실재하고(신경이 쓰이니까!), 중요하고(이건 인성 문제였으니까), 구체적이고(우리는 내가 부주의했던 특정한 경우들에 대해 논쟁했으니까), 그 목적을 서로 수용할 수 있었다(둘 중 누구도 상대방의 동기에 의문을 품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절대 그렇지 않아. 나도 네 시간을 소중히 여겨. 너는 내 가장 친한 친구니까."

하지만 말하다보니 조나의 다른 주장이 다시 떠올라 나는 쥐어짜듯 대답했다. "그런데 요즘 계속 이런 식이라니? 지난 금요일에 너도 과학관에서 나를 30분 가까이 기다리게 했잖아." 나는 반응을 살피려고 그의 얼굴을 한번 살피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 내가 늦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이게 정말 인성 운운할 일이야?" 내가 한마디씩 덧붙일 때마나 조나는 인상을 찌푸렸고 얼굴은 갈수록 벌게졌다. (...) "나중에 기숙사에서 다시 얘기해." 조나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홀로 남겨진 나는 방금 일어난 일을 이해해보려 애썼다. 우리의 논쟁은 특정한 사안을 두고 시작됐지만, 갈수록 점점 커져서 이제 수습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상대의 모든 주장을 반박하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나도 어느 정도 알았다. 그건 자신의 주장을 발전시킬 시간을 낭비하고 스스로가 불합리한 반대론자임을 자인하는 꼴이었다. 하지만 조나의 어이없는 주장이 너무도 내 신경을 긁어 도저히 생각대로 해나갈 수 없었다.

나는 기존의 원칙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논쟁 자체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만 물을 게 아니라, 논쟁 안에서의 주장들 중 어떤 주장에 대응할 것인지도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닐까.

침묵은 논쟁 자체에 뿐만 아니라, 논쟁 주장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논쟁에 대한 침묵 판단은 '가치 있는 반대'를 위해 힘이나 감정을 소모하지 않기 위함이다. 주장에 대한 침묵 판단 또한 그러하다. 상대의 주장을 묵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싸울 필요가 없는 지점에서 힘을 들이지 않기 위함이다.
 

#2-4 주장 대응에 대한 판단

나는 어떤 주장에 대응할 지 말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2가지 기준을 만들었다. 둘 중 하나에만 '그렇다'여도 대응할 이유는 충분하다.

1. 필요
분쟁을 전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특정 주장을 밀고 나갈 필요가 있는가?

2. 진전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특정 주장에 대응할 경우 분쟁의 전반적인 해결에 다가갈 수 있는가?

조나가 제기한 애초의 불만 중 두 가지의 주장만이 이 기준을 충족했다. 하나는 내가 다섯 번이나 늦었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내가 부주의한 사람이라는 핵심 증거였기에 나는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이날 오후에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이었다. 그 지적은 전반적인 분쟁 해결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쟁을 촉발시킨 당장의 원인을 생각하면 진전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의 나머지 불만들은 괘념치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그 불만들에 대해서도 서로 생각이 다를 수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분쟁의 포괄적인 차원에서는 진전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우리의 의견 불일치가 전면전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의견 차이는 남겨두어야 했다.

즉, 긁어부스럼을 만들지 말라는 얘기다. 더 강한 토론자가 되는 길은, 먼저 논제를 명확히 하고 그 논제를 위한 출혈만을 감수하는 것이다.
 

#2-5 침묵: 가치 있는 반대에 집중함

내게는 RISA + 주장 대응에 대한 2가지 판단 기준이 논쟁에서의 필수적인 '차단' 장치였다. 목표는 모든 논쟁을 배제하기보다는 우리가 가장 가치 있는 반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나쁜 논쟁을 배제하는 일이었다. 반대할 일이 너무 많은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스스로가 치를 전투를 잘 골라야 했다.

일레인 스캐리 교수의 말처럼, 침묵이란 '차단(clogging)'이다. '침묵'은 모든 논쟁을 배제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가장 가치 있는 반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나쁜 논쟁만을 차단한다. 추가로, 내가 대응하지 않아도 되는 주장 또한 차단한다.
 

#2-6 '안전하게 반대'할 공간

공적인 영역 특히 정치 토론의 장을 보면, 좌파나 우파나 다른 쪽이 마이크를 잡는 시도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사상적 국경의 장벽을 세우는 것과 같고, 이른바 반대로부터 안전한 공간이라는 영토를 구축하는 셈이다.

나는 민감한 주제일 경우엔 토론의 대립적 형식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토론장 최악의 불한당은 스스로를 이단아라 부르는, 언론의 자유를 잔혹한 언사에 대한 허가증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었다.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는, 그러지 않으면 그저 '응석'일 뿐이라는 생각은 사람들을 사상의 장에서 등을 돌리도록 만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종류의 안전한 공간이다. 반대로부터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 안전하게 반대할 공간. 민감한 주제를 피하기보단 어떻게 그런 주제에 대해 좋은 토론을 할 수 있을지를 논의해야 한다.

"당신이 하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나는 당신이 말할 권리를 죽을 때까지 옹호할 것입니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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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말은 볼테르가 한 말이 아니라, 다른 이가 쓴 볼테르의 전기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2-7 공적 토론을 위한 체크리스트

우리는 '안전하게 반대할 수 있는' 공적 토론을 위한 3가지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1. 메신저 공격 금지
토론에서 모두의 평등한 도덕적 지위에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예의보다는 자기 보호의 문제였다. 따라서 누구든지 발언할 권리가 있고, 어떤 주장이든 동등한 숙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토론대회의 기본 바탕이었다. 만약 그 전제를 빼버린다면 토론은 그저 가식적인 행위에 불과할 터였다. 그러므로 '북유럽인은 도덕성이 없다'나 '이슬람교도는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다' 같은 주장은 토론 주제가 될 수 없었다.

2. RISA 충족
공적 토론을 주최하는 일의 상징적 의미를 고려한다. 케이블TV에서든 시의회에서든 대학 캠퍼스에서든, 공적 토론에는 어떤 함의가 담겨 있다. 그 주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큼 가치 있고, 두 진영 모두 합리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 결국 해당 토론이 RISA(반대가 실재하고, 중요하고, 구체적이며, 목적이 상호 수용 가능함)를 충족해야 했다.

3. 토론자가 짊어지는 부담 고려
토론자는 상처 입거나 지치기 쉬운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도전받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지만, 특히 토론이 개인적인 사안과 날것 그대로 관계될 때는 고통의 무게가 배가되었다. 따라서, 어떤 발언에 따르는 부담을 유난히 많이 짊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한다.

이 공적 토론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나니, 내가 이전에 만든 만들었던 RISA 체크리스트는 다시 생각해보면 편리한 발명품이라기보단 우리가 이미 갖고 있던 좋은 반대에 대한 기대를 구체화한 것이었다. 만약 이런 기준에 미달하는 주제를 우리가 인정해준다면 토론 활동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터였다.

이 체크리스트는 토론자들에게 '더 잘(안전하게) 반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토론 문화의 순기능을 전파할 수 있는 역할도 수행한다.
 

#3 나의 생각

#3-1 침묵에 흐르는 낙관주의

반대에 흐르는 낙관주의처럼, 침묵에도 낙관주의가 흐른다. 침묵은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논쟁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혹은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주장만을 남기기 때문이다. 마치... 성공률이 아주 높은 연금술 레시피와도 같다. 금을 만드는 연금술이 실존한대도, 그게 침묵보다 값지진 않을 것이다.
 
반대에 흐르는 낙관주의와 마찬가지로, 침묵에 흐르는 낙관주의는 입론자들의 선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토론은 '대화'라기보단 '태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악의로 똘똘 뭉친 입론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침묵'을 궤변을 위한 스킬로써 활용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을 것이다.
 

#3-2 집단 혐오 표현을 통한 자기방어 

'인터넷'이라는 공간만큼 '안전하게 반대'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익명성은 '토론자가 짊어지는 부담'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RISA는 당연하다는 듯 무시되며, 메신저 공격은 널려 있다. 개인에 대한 메신저 공격도 많지만 그보다 더 많은 건 집단에 대한 메신저 공격(집단 혐오 표현)이다. 종류가 너무 많아 내가 굳이 예시를 들 필요가 없을 정도다. 누구나 머릿 속에 떠오르는 집단 혐오 표현들이 있을테다. '안전하게 반대'할 수 있는 공간이 '안전하게 공격'하는 장소로 활용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메신저 공격의 모양을 하고 있는 집단 혐오 표현은 사실, 공격보단 자기방어를 위해 사용된다. 상대방의 메시지를 반박하는 건 귀찮고 따분한 일이다. 게다가 100% 옳거나 100% 틀린 주장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주장을 반박할 때는 (나만이 옳다!라는 기존 생각에 의한) 인지부조화가 오기 십상이다. 인터넷은 대부분 쉬려고 오는 장소인데 스트레스까지 받아야겠는가? 자신의 고결한 사상적 영토를 손 쉽게 지키기 위해서는 집단 혐오 표현만한 게 없다는 말이다. 특정한 상대를 한 단어 안에 넣어버리기만 하면 모든 반박이 완료된다 (혹은 완료된 것 같다라는 착각이 든다).
 
그런 행위에 공감이 되진 않지만, 동시에 완전히 이해못할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순수하게 상대방을 괴롭히려는 의도로 '서로 다른 것'을 '옳고 그른 것'으로 둔갑시켜, 가만히 있던 상대를 억지로 논쟁의 장으로 끌고 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꽤 흔한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시달리다보니 간편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4 요약

'침묵'이라 쓰고, '선택과 집중'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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