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브루스 코치는 말했다. "지금 너희는 깨끗하고 훌륭한 토론자들이지. 하지만 간혹 대놓고 지저분하게 게임을 하는 팀도 있어. 물론 너희는 그런 팀을 경멸하겠지. 하지만 문제는 제대로 대응하는 법을 모르면 그런 녀석들에게 결국 지게 된다는 거야. 좋은 토론자는 나쁜 토론자가 술책을 부리면 지게 되어 있어."
#2 핵심 논리
#2-1 쇼펜하우어의 논쟁술 1
쇼펜하우어는 『논쟁적 토론술Eristische Dialektik』이라는 책에서, 나쁜 토론을 일삼는 논쟁가(불한당)는 "인간 본성의 타고난 천박함"에서 탄생한다고 썼다. 만일 인간이 고결하다면 토론의 목표는 오로지 진실을 찾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 인간은 (감성적인) 허영덩어리이며, "요설과 거짓"을 늘어놓을 때가 바로 이런 악덕이 발현되는 순간이다. 설령 토론이 선한 믿음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그런 의도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변증법은 진리와 논리에 기대는 반면, 논쟁술은 겉보기에만 그럴듯할 뿐 실은 진실성을 희생시켜 토론에서 승리하려는 불한당이 쓰는 기술이다. 우리는 모두 타고난 논쟁가들이므로 논쟁술로부터 자유롭기란 불가능하다. 누구든지 나쁜 토론자가 되거나 그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논쟁에는 조건만 갖춰지면 언제든 활활 타오를 불씨가 들어 있음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 채로.
쇼펜하우어는 독자가 불한당에게 잘 대처하기를, 또 불한당이 되기 않기를 바라며 책을 썼을 것이다.
#2-2 '설득'과 '설득력'
많은 불한당들은 설득과 설득력 있다는 인식의 차이를 교묘히 활용하는 데 선수다. 전자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과 관련되는 반면, 후자는 유창한 언술이나 정보력 같은 더 광범위한 자질을 갖추기 위한 방편으로 토론을 활용한다. 설득이 한 라운드의 결과를 말하는 거라면, 설득력은 다양한 환경에 적용 가능한 사회적 승인이다. 확신과 지배력을 승리로 해석하는 문화에서는 특히 설득력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왜곡된 렌즈를 통과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토론에서 참가자들은 설득을 목표로 설득력을 증명해 보인다. 그래서 토론은 언제나 볼거리와 숙의(Deliberation), 책략과 진실 추구, 경쟁과 협력의 결합물이다. 토론의 이 표현적 측면들이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니다. 볼거리는 사람들에게 정치에 참여하도록, 사회적 판단을 내리도록, 아이디어를 더 널리 퍼뜨리도록 의욕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우리는 토론의 진지하고 숙의적인 측면에 반하는 행태가 언제 발생하는지에 대해 정직해져야 한다.
토론의 진지하고 숙의적인 측면에 반하는 행태는, '설득력을 위해 설득을 포기'하는 순간 발생할 테다.
#2-3 불한당에게 강탈당한 '설득력'
토론대회의 고상한 규칙은 불한당의 괴롭히기 기술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지만, 그 보호는 완전하지 않다. 경험이 부족한 심판은 불한당들의 확신과 기세(설득력)에 눌려 승리를 쥐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판결의 특징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토론은 승리의 이유가 단순해 보인다. 한쪽이 자기 입장에 수긍하도록 심판을 설득한 것이다. 하지만 예컨대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는 토론에서 특정 팀이 심판을 '설득'했다는 건 정확히 무슨 뜻일까? 평화주의자였던 심판이 이제 침공이 옳다고 믿게 됐다는 뜻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건 이긴 팀이 자신들이 더 설득력 있다고 심판을 납득시켰다는 뜻이다.
불한당은 토론 형식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걸 가로채서 승리를 쟁취한다. 그들은 대립 형식을 상대를 두들겨패는 데 활용하고, 수사법을 논리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논리를 회피하는 데 활용했다. 그들은 토론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거짓말을 퍼뜨렸다. 나쁜 토론은 토론 자체에 약점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강탈당한 토론이 세상에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드러내 보였다.
때때로 거짓이 승리하는 이유.
#2-4 쇼펜하우어의 논쟁술 2
(다시 『논쟁적 토론술』로 돌아와서) 쇼펜하우어는 '나쁜 토론을 일삼는 논쟁가'(불한당)의 수법을 이해한다면, 그의 공격에 맞서 진실을 방어할 수 있다고 썼다. "설령 진실을 말하는 쪽이라 해도 그 진실을 방어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논쟁술이 필요하다. 부정직한 속임수에 대처하려면 그게 뭔지를 알아야 한다. 나아가, 스스로도 종종 그런 기술을 활용해서 적을 물리쳐야 한다."
이렇게 양측 모두가 논쟁술 활용법을 잘 알고 있다면 상호 저지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 전혀 다른 종류의 반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나쁜 토론은 백만 가지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지만 기본 유형은 단순하다. 불한당은 다음 다섯 가지 가면 중 하나를 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거짓을 고하며, 동시에 인간이기에 진실을 밝힌다.
#2-5 불한당 - 1. 회피자
홍길동: "화력발전은 환경에 해롭습니다. 그것이 기후위기를 앞당기기 때문입니다."
불한당: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화력발전처럼 안정적인 에너지원이 필요함을 뜻합니다."
방향전환
회피자는 어떤 주장에 절대 직접 대응하지 않고 자신이 교묘하게 회피해야 하는 상황을 안다. 주특기는 방향전환이다. 핵심을 아예 무시하는 행위는 속이 너무 빤히 보이므로, 대신 구체적 주장을 하지 않고 포괄적인 대상의 특정 측면에 대해 논평한다.
인신공격
때로 방향전환은 상대를 불쾌하게 만드는 술책으로도 작동한다. 주장이 아니라 주장의 옹호자를 겨낭하는 인신공격이 그 예다 ("환경에 해롭다고요? 당신은 SUV를 몰고 다니잖아요").
반박
'다른 것도 그렇다'라는 식의 공격도 마찬가지다 ("환경에 해롭다고요? 그건 풍차도 마찬가지예요").
최선의 대응: 본래 주장 계속 이어가기
계속 버티면서 본래의 주장을 이어간다. 물론 상대가 인신공격을 하거나 틀린 말로 공격할 경우 힘겨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이 무시하고 싶어하는 주장에 힘을 빼는 순간, 회피자는 (무시하려던 주장의) 검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걸 막아야 우리는 굴복하지 않고 계속 논쟁할 수 있고, 토론을 본래 주제로 되돌려 틀린 부분을 정정할 수 있다.
가장 흔하고 일상적(?)인 수법이다.
#2-6 불한당 - 2. 비틀기 선수
홍길동: "시민 개개인에게는 총기를 소유할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불한당: "개인의 자유를 위해 공동체의 안전이 희생돼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건 전형적인 자유지상주의적 주장입니다."
허수아비 때리기
비틀기 선수는 반대 주장을 엉터리로 해석한다. 그는 본래 주장의 핵심에 대응하지 못하거나 대응하지 않기 위해 주장의 왜곡된 버전(허수아비)을 만들어 그걸 무너뜨리는 모습을 연출한다.
증명 부담 늘리기
허수아비 때리기는 본래 토론자가 옹호하는 대상을 확장하곤 한다. 그리하여 증명의 부담을 늘리는 것이다. 이것은 특수한 주장을 광범위한 원칙으로 일반화하거나('총기 소유 권리'에서 '공동체의 안전이 희생돼야 한다'로), 유사한 경우를 유추하거나('총이 괜찮다면 다른 무기도 괜찮지 않을 이유가 뭐겠는가?'), 주장을 범주화하는('전형적인 자유지상주의적 주장')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최선의 대응: 왜곡 바로잡기
이런 비틀기를 바로잡는다. 비틀기 선수가 A를 B로 왜곡했다고 (본래 주장과 왜곡한 부분을) 정확히 지적하고, 필요하다면 그게 왜 허위 진술인지 설명한 다음 논의를 진짜 주장으로 되돌려놔야 한다.
TV 토론에서 이러한 '비틀기'를 사용하는 토론자가, 마치 통찰력이라도 있는 양 비춰지는 경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2-7 불한당 - 3. 말싸움꾼
홍길동: "이번 프로젝트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략을 세웁시다."
불한당: "데이터만 보면서 일하다가는 세부 사항을 놓치기 쉽죠. 현장에서 느끼는 감각이 더 중요할 때도 많습니다."
홍길동: "맞습니다. 그럼 이번엔 현장 인터뷰에 기반합시다."
불한당: "아닙니다. 현장 인터뷰는 사견이 지나치게 개입되기 마련입니다. 저는 그저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자는 얘기였습니다."
골대 움직이기
말싸움꾼은 반박에 능하지만 절대 자기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어떤 생각도 그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이다. 그의 기본 전략은 항상 공격뿐이다. 말싸움꾼은 한 가지 입장에 충실한 법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 따라 끊임없이 골대를 옮긴다.
도그 휘슬(dog-whistling)
말싸움꾼은 나중에 그럴듯하게 부인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입장을 내보이며 은근슬쩍 빠져나가기도 한다. 예컨대 애매모호한 말로 특정한 메시지를 전하는 도그 휘슬 전략을 쓴다 ('저소득층에 대한 치안 강화' 대신 '법과 질서'를 들먹이는 식이다).
최선의 대응: 특정 입장으로 못박기
말싸움꾼의 입장을 하나로 못박는 것이다. 가령 "그래서 당신이 정말로 믿는 건 뭔가요?", "당신을 설득하려면 제가 뭘 증명해야 하죠?" 또는 "그 말은 무슨 뜻인가요?"라고 질문한 다음 이를 주장의 발판으로 삼는 것이다.
'회피자'가 어떤 핵심적 사안이 언급되지 않도록 만드는 불한당이라면, '말싸움꾼'은 방어를 아예 거부하는 불한당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마주친다면, 격투기 게임에서 '방어 버튼'을 아예 뽑아버린듯한 느낌일까?).
TMI
말싸움의 개념은 기원전 6세기경 산스크리트어 경전 '니야야수트라'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경전은 논쟁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바로 명확하고 타당한 주장을 주고받는 좋은 토론(바다vada), 비열한 전술을 포함하는 나쁜 토론(잘파jalpa), 자기만의 독창적인 의견을 내세우지 못하는 시비꾼이 벌이는 말싸움(비탄다vitanda)이다.
토니 모리슨은 '말싸움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인종차별의 매우 심각한 역기능은 주의 분산입니다. (...) 누가 당신한테는 예술성이 없다고 하면 당신은 그걸 고민해요. 누가 당신한테는 독창적 세계가 없다고 하면 당신은 또 그걸 고민하지요. (...) 그런 식으로 당신은 늘 뭔가가 결핍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2-8 불한당 - 4. 거짓말쟁이
홍길동: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을 고려하면 수력 발전은 필수불가결합니다."
불한당: "수력 발전은 화력 발전보다 비쌀 뿐만 아니라 탄소 배출도 심각합니다. 한 마디로, 쓰레기죠."
거짓말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오도하기 위해 스스로 사실이라 믿지도 않는 진술을 한다. 우리가 이에 대응하며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 폭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거짓말을 정말 잘하시네요!" 또는 "그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게 바로 거짓말쟁이가 이기는 방법이다. 그는 우리를 감정적으로 만들고 사적인 공격을 하도록 자극한다.
엄포 놓기
거짓말쟁이는 엄포를 잘 놓는다. 그는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는 변명 뒤에 숨어서 부정직한 말을 한다. "언론이 전부 썩었다"라고 말하고 나서 이의 제기를 받으면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한 말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후술할 '플러그 꽂기와 대체하기'를 적용하기 위해선, 그게(엄포가) 정확히 무슨 뜻이냐고 추궁하여 그를 특정 입장으로 못박아야 한다.
거짓 정보 퍼뜨리기
거짓말쟁이들은 사실을 확인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점과, 상대에게 온갖 거짓말을 해대면 주의를 분산시켜 본래 주장을 망각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용한다. 거짓말은 30초면 되지만, 반박에는 30분이 걸린다. 후술할 '플러그 꽂기와 대체하기'를 이용해 거짓말쟁이의 왜곡을 드러내자. 몇 가지 대표적인 거짓말에 집중해 왜곡을 드러내다보면, 어떤 패턴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최선의 대응 1단계: 플러그 꽂기
거짓말을 더 포괄적인 관점에 접목(플러그)시킨 다음, 그렇게 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설명하라. "이민자들이 '폭력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란 시민보다 폭력 범죄 유죄 판결을 받는 비율이 더 낮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지요?"
최선의 대응 2단계: 대체하기
거짓말을 진실로 대체한 다음, 왜 후자가 현실에 더 가까운지 설명하라. "진실은 이민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폭력적이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위험하고 치안이 삼엄한 지역에 살고 있음에도 범죄에 덜 연루됩니다."
기억해야할 것은 '플러그 꽂기와 대체하기'로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진 못한다는 점이다. 대신 그런 주장이 비합리적이고 부정직하다는 것은 보여줄 수 있다.
#2-9 불한당 - 5. 깡패
홍길동: "이번 공원 개선 사업의 예산 사용에 대해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불한당: "(갑자기 끼어들며) 무슨 소리예요! 이런 거 다 쓸데없는 낭비입니다! 주민들한테 필요도 없는 공원 꾸미기에 왜 돈을 쓰죠? 차라리 그 돈으로 도로 수리나 하세요!"
난투극
토론의 논리 안에서 부정한 요령을 부리지는 않는다. 그들은 아예 논리 자체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토론을 승리의 유일한 척도가 패권을 인식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는 난투극으로 둔갑시키고자 했다. 깡패의 목표는 설득이 아니라, 상대를 침묵시키고 소외시키고 상대의 의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공식 토론대회라면 그런 불한당을 저지할 수 있다. 사회자에게 자기 차례가 아닐 때 말하는 사람의 마이크를 끄고, 사실 확인을 위해 개입하거나 나쁜 행동을 중단하라고 명할 권한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직장, 가정, 공론장 등)에서 부딪히는 대부분의 나쁜 반대에는 이런 중재가 불가능하다.
최악의 대응
상대가 깡패일 때 그에 대응하는 가장 나쁜 방법은 논쟁을 중단하거나 서둘러 끝냄으로써 상대가 시간의 흐름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두번째로 나쁜 방법은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대신 방해 언동(특히 그게 그럴듯하다면!)에 휩씀림으로써 의제를 상대가 설정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방해 술책에 대해 눈에는 눈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려는 유혹도 피해야 한다.
사실을 그런 난타전을 지속할 에너지와 뻔뻔함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또 어쩌다가 한두 점 따낸다고 해도 어차피 불한당과의 게임에서 그를 능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말 그대로 말이 안 통하는 유형이다.
#2-10 깡패에게 맞서는 방법
최선의 대응: 토론의 형태 되찾기
일상에서 깡패를 만날 때의 최선은 그냥 자신의 주장을 자기만의 속도로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이다. 상대가 방해하면 잠깐 멈추고, 그 시간을 나중에 사용할 자기 시간으로 여기면 된다. 그러면 양측이 서로 다른 종류의 토론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바로 그게 핵심이다. 싸움은 토론이 아니고, 우리는 상대가 일방적으로 규칙을 바꾸는 일을 허용하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아래의 세 가지 방법이 단순한 처세술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목표는 훨씬 더 원대하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그 자리에서 물리칠 뿐 아니라, 효력을 약화시켜서 토론을 올바른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1단계: 진짜 토론인 척하기
일단 그게 토론인 척하라. 1959년 닉슨과 흐루쇼프와의 대화에서, (깡패처럼 무례하게 행동하는 흐루쇼프를 대하는) 닉슨의 첫 전략은 토론을 벌이는 척하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 자기주장을 하면서 상대방의 반론을 공정하게 듣는 양 행동했다. 토론에서 말하기는 일종의 대화다. 만약 청중이 있다면 목소리를 좀 높여도 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향해 목청 높여 외치지는 말고 그저 대화하듯 말하라.
2단계: 멈추고 이름 붙이기
(닉슨의 말을 끊고 자기말만 하려는 흐루쇼프에게 닉슨이) "만일 서기장님이 상원의원이라면 우리는 서기장님을 의사 진행 방해자라고 불렀을 거예요! 서기장님 혼자 계속 말하고 다른 사람은 말을 못하게 하니까요." 그는 대화를 중단하고 토론을 와해시키는 특정 행동에 이름('의사 진행 방해')을 붙였다. 깡패는 토론을 혼돈 속으로 내몰며 그것을 연극적 언동으로 가린다. 이때, 마치 마술사의 속임수를 드러내듯 그들의 행동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술은 자칫 인신공격에 가까워질 수 있고, 의견 차이를 더 다루기 어렵게 만들 위험이 있다. 닉슨도 결국 이 지점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사람이 아닌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유념해야 한다.
3단계: 다음으로 미루기
대화가 끝날 무렵 닉슨은 토론을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점점 싸움으로 치닫는 토론을 계속 고집하기보다는 차라리 재대결 약속을 따내는 쪽을 택했다. 토론자가 하는 결정 중에 토론을 끝내는 것보다 더 중대한 결정은 없다. 반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합당한 반대를 위한 에너지를 남겨두기 위해서 이런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더 나은 대화를 준비할 수 있다.
상대가 꼭 불한당이 아닐지라도 이 대처법을 활용할 수 있겠다. 바로, 일상적 대화에 날이 서기 시작해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에 말이다. 먼저 토론의 형식을 갖추게끔 만들고, 그조차 통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미루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2-11 '나쁜 반대'의 반대는...
쇼펜하우어는 『논쟁적 토론술』을 쓴 지 20여 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좋은 토론에 대한 전망에 냉담했던 것 같다. 노년에 접어든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논쟁을 하면서 "모자란 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도덕적 타락"도 드러낸다고 더 한층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불한당과의 논쟁을 피하라고 강조했다. 또, 토론을 시도할 수는 있지만 "상대가 응수하면서 조금이라도 고집을 부릴 기미가 보이면 그 즉시 멈추어야 한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냉소주의가 아무리 깊을지라도 이 철학자 역시 일말의 여지는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책임과 의무가 있을 때는 그런 사람(불한당)과 대화해야 한다"라고 썼다.
책임과 의무. 시민으로서 우리는 잘 반대할 의무가 있다. 폭력이 아닌 설득의 힘으로 분쟁을 해결하고, 공통의 이해가 걸린 문제를 숙의하고, 우리가 반대하는 이들에게 이유를 말하고, 그에 응답할 기회를 주는 것. 이 의무는 우리와 집, 일터, 동네, 국가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강하게 적용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토론을 회피하는 일은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쁜 반대'의 반대는, '동의'가 아니라 '좋은 반대'다.
좋은 반대는 토론의 목적이다.
#3 나의 생각
#3-1 '설득'은 방향이요, '설득력'은 에너지다
#2-1 ~ #2-3에 있는 빨간 글씨를 나쁜 의미라고 오해해선 안 된다. 가령, 빨간 글씨에 해당하는 설득력, 사회적 승인, 확신과 지배력 따위를 속임수의 범주에 두는 것은 잘못된 분류다. 빨간 글씨들을 가장 대표하는 것은 설득력일텐데, 설득력은 진실(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설득력 없는 진실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도 그걸 보려하지 않고 언급하려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들을 생각해보라.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의 최후를 생각해보라.
"Si vis pacem, para bellum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설득력없이 진실만으로 승부하려는 것은 비효율적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듯한 이상 외에는 아무런 힘이 없는 당신을 당신의 적이 가만 둘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루고 싶은 이상(내가 믿는 진실)이 있고 그 이상을 남에게 설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힘(에너지)을 길러야 한다.
우리도 불한당이 되자는 게 아니다. 불한당만 설득력을 가지나? 우리에게도 수사법이라는 무기가 있지 않은가.
#3-2 어둠의 '수사법'
결국 본 게시글은 불한당이 쓰는 수사법에 대해 정리한 글이다. 그런 면에서 '자기 방어'라 쓰고, '어둠의 수사법'이라고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수사법과 어둠의 수사법은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설득력을 위한 기술이고, 둘 다 토론 상대 뿐만 아니라 심판과 청중에게도 향한다.
만에 하나 내가 어둠의 수사법을 쓰게 될 날이 올까? 다시 말해 불한당이 되어야만 하는 순간이 생길까? 약간의 진실을 희생해서 강력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설득력으로 내가 믿는 이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4 요약
설득력의 우선순위가 진짜 설득보다 높은 사람을 불한당이라 부른다.